며칠간 이런 저런 이유로 면도를 하지 않았다.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해 주었다. 꽤 공통적인 패턴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.
1. "면도 좀 해라" 는 말과 함께 구박.
2. "멋진데. 박찬호 수염같구나."
3. "산적 같다. 면도 좀 해라." 2번과 비슷한 것.
4. 신경 쓰지 않음.
거의 대부분이 이 패턴에 속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.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이외의 상황을 만들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.
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'산적 같다'는 표현이다. 도적들 중에는 산적 말고도 해적도 있다. 하지만 '해적 같다' 라는 표현은 그리 쓰지 않는다. 같은 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두가지 직업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.

대표적인 산적과 해적(좌:임꺽정, 우:김선생 남편)
잘은 모르지만 산적보다는 해적이 더 부유한 면이 있다. 일단 해적질을 하려면 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. 산적은 그냥 산에 숨어서 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털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적으로 변모하는 반면에 해적은 일단 배부터 구해야 한다. 배 하나 없는 해적은 뭔가 이상하면서 해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. 게다가 배를 타려면 배와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사실이다. 이러한 점에서 해적은 산적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.
그렇다면 왜 수염만 기르면 산적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? 산에 사는 사람들은 잘 씻지도 못하며 거울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자신의 얼굴도 보기 힘들다. 중요한 것은 물이 귀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. 반면 해적은 언제라도 물 - 비록 염수일지라도 - 을 얻을 수 있으며 때문에 좀 더 고급스런 이미지를 얻는게 아닐까 생각한다.
해적이 더 고급스럽다는 것은 대장들의 칭호에서도 알 수 있다. '산적 두목'과 '해적 선장'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지는 자명하다고 생각한다. 다음의 대화를 보자.
A : 너는 정말 산적 두목 같구나.
B : 너는 정말 해적 선장 같구나.
두 말의 뉘앙스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.
하지만 산적도 산적 나름.

꽤 유명한 외국의 산적. 의적이라고 해야하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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